2025. 1. 18. 12:50ㆍ2024/paper
2024년에 종이에 그린 풍경그림들을 그러모아 봤다. 마산현대미술관 레지던시에 들어가 있던 6개월간 그렸던 그림들이다. 주로 여름과 가을에 그린 풍경들이다. 이 그림들을 보면 그때의 시간과 분위기, 그 자리에서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내가 떠오른다. 작업실에서 그리는 캔버스 작업과는 달리 이 그림들은 눈앞에 보이는 풍경을 보며 그리거나 직접 봤던 광경을 재현한 그림들이다. 사진첩의 예전 사진을 보는듯한 기분이 드는 건 종이 위에 그려진 풍경이 내가 경험한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 대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왜 이 풍경들을 그리게 되었을까. 레지던시에 입주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와 그려야 한다는 능동과 수동이 섞인 그림에 대한 마음이 나를 바깥으로 내몰았고, 나는 자전거를 타고 그릴만한 것들을 찾아 나섰다. 내가 챙긴 것은 가로로 긴 비율의 종이와 과슈물감이었다. 풍경을 사냥하듯 주변을 보는 내 눈에는 가로로 긴 프레임이 씌워진 듯했다. 그래서일까. 밭이나 산과 같이 넓고 긴 풍경이 눈에 들어왔고 그 자리에 그림그릴 도구를 펼쳤다.
밭을 가로지르는 도로 중간에, 어느 마을 꼭대기 저수지의 가쪽에서 그림을 그렸다. 내 눈앞에 보이는 풍경이 한 명의 사람이라면, 여기에는 우리 둘 뿐이라는 평안함과 풍경과 내가 나누는 대화가 그림으로 남겨질 때 느껴지는 만족감만으로도 나는 그림이 어떻게 그려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이 시간은 능동과 수동이 아닌 그림만이 나에게 줄 수 있는 고유한 기쁨이 아닐까.
그 시간이 좋아서 풍경을 그렸다. 꽃이나 나무를 그리기도 하고 산과 강, 하늘도 그렸다. 캔버스에 이런 그림을 새로이 그리는 건 또 다른 감정과 힘이 드는 일이지만 그 시작이 이런 시간과 그림이기에 주저함은 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