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5. 20:53ㆍ2022
사랑의 기하학 |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학예사 정서연
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울고 웃는다. 모든 생에 걸쳐 사랑을 찾아 헤매었다는 기형도의 시처럼, 사람들은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 영화 그리고 시와 소설을 보며 삶의 공감과 위로를 받는다. 사랑은 어떠한 상황에도 독립적인 개인사로 유일하게 존재하지만, 누구나 유사한 형태로 공감할 수 있는 문맥이자 공식이기도 하다.
사랑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 남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
이처럼 사랑은 서로 다른 대상이 존재한다는 전제조건이 성립해야 이루어질 수 있는 것으로, 인간이 수없이 이루어내는 타인과의 만남, 관계 속에서 무한히 일어나고 변주하는 사건이다. 사랑의 범주는 비단 가족, 친구, 연인과 같은 단순한 개인사를 넘어, 전 지구적 차원에서의 문화, 사회, 정치적인 것을 포괄하는 근간이기도 하다.
오늘날 사람들에게 사랑은 형식과 공식에 따라 해석되기를 바라는 것 같다. '사랑에도 공식이 있나요?'라는 한 드라마의 제목처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방식이나 계산된 법칙을 통해 정답을 찾아 사랑을 좇아가고자 하는 사회적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한 예로 칼 융(Carl Jung)의 인간 심리 유형론을 토대로 고안된 '성격유형검사 MBTT 열풍이 있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16가지로 분류된 타인의 정격적 특성과 행동을 토대로 관계에서 발생하는 인과를 공식처럼 이 하고 도움받고자 하는 심리가 그러하다. 이성 혹은 친구 관계에서 재미삼아 사용되던 이 검사는 현재 취업시장까지 파고들어, 많은 취업 준비생이 회사가 원하는 성격유형에 맞추어 성격을 바꾸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처럼 사랑은 점차 공식화되어가고 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사랑의 전제조건이 자본이라는 수치로 치환되어, 사랑이라는 인간의 존엄을 사치로 간주하기도 한다. 통계청의 「2022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결혼에 대해 "반드시 해야 한다"거나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미혼남녀는 30% 내외로 조사되었는데, 그 이유로 가장 많은 것은 '결혼 자금이 부족해서 (28.7%)였으며 그다음으로는 '고용 상태가 불안정 해서' (14.6%)였다. 물론 사랑과 결혼은 전혀 다르게 분리된 영역이지만, 사랑을 결혼의 전제조건 중 하나로 본다면 결국 인간관계에 따른 이유가 아니라 경제적인 이유로 사랑하지 않거나 사랑을 시작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회• 경제적 현상뿐만 아니라 사랑을 공식화하면서 일어나는 심리적인 문제도 있다.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사랑의 순수성을 잃어버린 지금, 모든 상황과 관계에 질서와 정돈을 원하는 심리는 완벽주의라는 성향을 낳게 했다. 인간에게서 완벽한 상태가 존재한다고 믿는 신념은 도리어 완전함에 대한 압박과 불안감, 나아서는 심리적 우울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우리에게 사랑은 과연 지속될 수 있을까?
《사랑의 기하학》은 측정하거나 공식화할 수 없는 개념의 '사랑'을 도형과 공간의 성질에 대해 연구하는 수학적 학문 '기하학'과 배치하여, 오늘날이 추구하는 이상향과 이에 따른 아이러니를 사유해보는 과정을 은유한 것이다. 기하학은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많은 예술가들에게서 영감의 원천으로 활용되었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추상적인 특징뿐만 아니라 공식이라는 성격적 의미를 은유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처럼 주제와 연결된 네 명의 작가들의 기하학적 시선과 경험을 통해 관객에게 오늘날 사랑의 다양한 측면을 사유하는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
장건율은 자연물에서 나타나는 조형적 요소와 구성을 극대화한 추상회화를 선보인다. 그는 주로 자연물 에 대한 관찰을 바탕으로 자신에게 수용되는 주관적인 세계를 포착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최소한의 형태와 색을 이용한 그의 페인팅은 기하학적인 형태를 지니며 원색을 주로 사용한 것인데, 이로 하여금 현실에 종속되어있는 만물의 형태와 색채의 아름다운 해방을 엿볼 수 있다. 기하학적 요소와 관능적 색채로 선보이는 그의 자연물들은 시간과 태양에 따라 변화하는 시각, 만물의 계절 등 환경에 따른 변화를 수용한 주관적 시간성을 함의한다. 이러한 지점을 작가는 최소한의 것으로 구성한 최대한의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고 말한다. 그는 현재 드로잉을 위한 회화작업에 몰두하고 있는데, 대형 회화작업을 통해 드로잉을 풀어나가는 단서를 찾아나서고 있다.
플라톤의 『향연」에서 소크라테스는 형체를 통해 형체 그 이상의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선 한 사람의 아름다운 형체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그다음 몸 너머 영혼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법과 제도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며, 더 나아가 보편적인 지식을 사랑하는법을 배운다. 이처럼 개인에서부터 시작해 보편적인 공식으로 나아가는 소크라테스의 과정은 결론적으로 지혜에 대한 사랑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지점은 인간이라는 점에서부터 시작된 직선이 타인을 만나 만들어내는 하나의 기하학적인 면적을 은유한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보편성을 넘어선 사회적 문제들이 시사하는 바는 오늘날의 사랑이 메말라가고 있다는 위기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들과 우리는 사랑이 가진 기하학적 면모를 보며 많은 사랑이 기하학적인 공식을 선망하지만, 보편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각자의 작품을 통해 직시하고자 한다.
'빛은 중력에 의해 휜다'는 말처럼 일직선으로 향해 갈 것만 같은 빛이라는 에너지도 일부는 중력에 의해 휘어지거나 구부려진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중첩되는 기하학적 형상들을 통해 우리는 이상적인 사랑을 나누기 위하여 어떠한 유연한 태도와 자세를 취해야 할지 사유해보는 시간을 가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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