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4. 01~ 04. 29, <무지개 갈잎>, 갤러리이든, 서울

2025. 2. 12. 14:392023

개인전 포스터 이미지

 

 


무지개 갈잎(rainbow fallen leaves)

지금 사용하는 노트를 알게 된 건 2년 전 동료 작가로부터다. 추천받은 노트는 사용자 마음대로 속지를 더하거나 빼기가 쉬워 바인딩이 자유로운 구조다. 지금의 노트를 만나기 전에는 주로 제본 노트를 사용했다. 노트에는 일정, 메모, 낙서들을 분류 없이 쓰곤 했는데, 이 두서없음이 언제부터인가 짐처럼 느껴졌다. 단지 몇 장의 종이라 할지라도 쓸모없는 것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반면 3년 전부터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노트는 무용한 내용을 억지로 들고 있지 않아도 되는, 필요에 따라 노트의 페이지를 없애거나 추가하기가 자유롭다는 점에서 제본 노트에 가지고 있던 아쉬움을 해소하기에 적합했다.

미술학원에서 일을 하며 버려지는 유인물과 학생들이 사용한 켄트지를 모으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종이가 모이면 노트 크기에 맞춰 재단한 뒤 전용 펀치를 사용해 속지로 만들었다. 자원을 재활용한다는 뿌듯함도 있었지만 그보다 이면지가 주는 자유로움이 더 좋았다. 

학원의 주인 없는 파레트와 붓으로 그리고 싶은 것들을 그렸다. 그림에 있어 좋고 나쁨, 성공과 실패에 대한 걱정 없이 천진한 마음으로 내 안에 있는 것들을 종이 위에 표현했다. 

주로 그리는 대상은 일상 주변의 꽃이나 식물이다. 봄의 목련이 피고 지는 모습, 여름 담벼락의 흐드러진 능소화와 가을이면 떨어지는 튤립과 겨울의 마른 가지 같은 것들을 그림으로 그렸다. 

세상에는 보편적인 조화로움과 구성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나는 자연이 그 자리에서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며 그 질문에 머무른다. 그러면 눈앞의 자연은 구성과는 무관한 상태로, 그저 현실에 ‘있음’으로 좋고 나쁨의 기준이 없다고 대답하는 듯하다. 나는 현실 앞에 서서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릴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 자연의 풍경을 마주하며 선을 긋고 색을 칠하는 순간, 거울을 바라볼 때 보다 더 선명한 방식으로 나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매 순간 내가 살아있음을 진술하는 방법이다. 나의 언어가 그림이라면 내가 하게 될 모든 이야기가 가장 순수한 모양으로 남기를 바라며 눈으로 보고 손으로 그린다. 이후 노트에 그린 그림들을 마치 사진첩에 하트를 누르는 마음으로 분류했다. 새로 바인딩된 노트를 다시금 펼쳐보며 내 그림의 보편성과 특이성이 무엇인지, 현재의 내가 어느 지점에서 좋음을 느끼는지 복기했다. 형태, 구성, 표현, 색채 혹은 그 그림을 그릴 때의 기억이나 기분까지도 생각했다. 

자연의 모습을 수집, 추출하여 나의 시선과 해석을 그림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며 유의미한 구성이나 변화를 더 큰 화면에 옮겼다. 붓과 물감으로 나만이 드러낼 수 있는 하나의 온전한 장면이 있다는 믿음으로 화면을 탐구하고 있다.


 

 

 

pieces_oil on canvas_90.9×72.7cm_2022

 

 

 

 

 

 

 

 

 

 

 

 

 

 

 

 

 

 

 

 

 

 

 

 

 

 

 

 

 

 

 

 

 

 

 

 

 

 

 

 

 

 

 

 

 

 

 

 

 

 

 

 

 

 

 

 

 

 

 

 

 

 

 

pieces_oil on canvas_58.4×116.8cm_2023

 


장건율의 무지개 갈잎 | 갤러리이든 설에덴

 돌아온 봄, 떡갈나무가 잔잔히 부는 바람에 잎을 떨어뜨리고 장건율은 갈잎의 하강하는 순간을 무지개로 이면지에 그린다. 이파리와 나무의 별리는 객관적 상실이었음이 분명하지만 작가에게는 또 다른 접합의 순간일 테다. 어디 비단 갈잎 뿐이랴, 장건율은 우리가 존재를 알아차리지도 못할 주변의 모든 자연을 그려 스스로의 가지에 덧붙이곤 작가의 개인적 감정과 경험을 섞어 작품으로 소화했다. 전시장을 채운 그의 작업을 찬찬히 보고 있노라면 별다른 설명이 없이도 어떤 동그라미는 장건율의 동그란 마음과 만나 동그란 꽃이, 어떤 굽이치는 감정은 넘실거리는 곡선으로 산과 들이 되었다는 것을 가늠할 수 있다. 이렇게 자연의 비정형을 원료 삼아 작가가 가진 작업 정형성의 조화로 탄생한 그의 작품 속에는 가장 ’ 자연스러운 ‘ 자연과 자신이 존재한다.

 그의 작품 특색중 하나인 총천연색의 화려함은 어딘지 모를 순수함을 지녔다. 색상을 섞어 쓰지 않고 순색을 고집하는 것은 정직성을 나타내는 그만의 또 다른 방법인데, 각각의 색들은 작품 안에서 저마다 가진 고유의 아름다움을 뽐내지만 결코 독자적이지 않은 조화로운 모습으로 관람객을 맞는다. 

 전시장 한켠에 무수하게 설치된 소품 작업으로 눈길을 옮겨보자. 300여 개에 달하는 소품 작업은 삶과 작업을 대하는 작가 장건율의 태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업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있는 그대로의 색상을 사용해 나타내는 방식으로 작품 철학에 무게를 더한 그는, 버려진 켄트지를 잘라 노트를 만들어 내팽개쳐진 재료들로 자유롭게 작업한 ’ 이면지 작업‘을 통해 ’ 장건율 다움‘ 에 마침표를 찍기에 이른다. 일상의 예기치 않은 장면들을 계속적으로 포착해 성실하게 그려낸 그의 소품 작업들은 그 숫자만으로도 작가의 하루와 한 달, 일 년, 어쩌면 인생의 전반을 유추하도록 한다. 

 문득 전시를 준비하면서 찾아 보았던 작가의 인터뷰 영상 제목이 떠오른다. ’ 장건율은 할 말이 많다.‘ 살아 숨 쉬는 것들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다 제 할 말을 가졌다. 다만 말을 하는 형식이 다를 뿐. 장건율은 이렇게 작품으로서 끊임없이 재잘재잘 떠든다. 우리가 이 전시에서 찾아야 할 것은 어떠한 담론이나 거창한 주제가 아닌,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작가 장건율의 시선이다.

자, 이제 장건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장건율은 아직도 할 말이 많다.


 

 

 

 

 

 

 

 

 

 

 

 

 

 

 

 

 

 

 

 

 

 

 

 

 

 

 

piece_oil on paper_41×31cm_2023

 

 

 

 

 

 

 

 

 

 

sight_oil on canvas_80×40cm_2023

 

 

 

 

 

 

 

 

 

 

 

 

 

 

 

 

 

 

 

 

 

 

 

 

pieces_oil on paper_76×56cm_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