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14. 13:39ㆍ2025
몇 주 전에 친구들이랑 진전면에 그림 그리러 갔었다. 그날 너무 추웠던 탓에 점심 먹기 전까지 그리려 했는데 삼십 분 정도 더 일찍 정리했었다. 조용한 마을에 젊은이들이 여기저기 앉아있으니 신기했는지 마을 주민 분들이 오며 가며 말을 걸어 주셨었다. 산불조심 조끼를 입은 어르신도 우리가 뭘 하는지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추운데 뭐 하러 이렇게 고생하느냐며 말을 건네셨다. 느티나무가 멋져서 그리려고 창원에서 왔다고 하니 저기 차 타고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아주 멋들어진 소나무가 한 그루 있다고, 다른 데서 나무 보러 오는 사람들은 여기 말고 저기 소나무 보러 간다고 한 번 보고 가라 하셨다.
언 손으로 네이버에 '진전면 소나무'라고 검색하니 '여양리 꽃소나무'가 나왔다. 소나무 종에 꽃소나무가 있는게 아니라 꽃미남처럼 다른 소나무보다 이뻐서 붙은 별명이라고 한다. 수령은 400년, 존재자체로 아름답고 살아온 시간만큼 의미가 있는 나무를 그림으로 그리기엔 왠지 내 그림이 지는 거 같아 그리진 않겠다고 생각하곤 점심 먹기엔 시간이 여유가 있으니 친구들이랑 다 같이 보러 가기로 했다.
네비가 알려주는 차선이 하나밖에 없는 길을 따라 깊숙이 들어가니 마을 초입 오르막길에 큰 소나무가 보였다. 사진으로는 그 크기가 가늠이 안 됐는데 소나무 아래로 들어가니 밑동 두께가 어마어마했다. 우리는 두 팔로 안아보기도 하고 온 몸을 기대기도 했다.
한 겨울에 친구들과 그림 그리러 마산 끝 까지 온 것, 함께 추위에 떨며 나무와 풍경을 그린 것, 그리고 시간이 남아 400년 된 노거수를 찾아와 그 나무 아래에서 떠드는 것까지. 나는 이 날이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순간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친구들과 나무가 같이 보이는 곳까지 올라가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몇 년간 그림을 그리면서 사람을 그린적이 딱 한 번 있다. 작년 레지던시에 있으면서 중학생 대상으로 수업을 했어야 했는데 그 때 진전중학교 학생 두 명과 그림을 그리러 논 한가운데 있는 큰 느티나무 아래 정자에 간 적이 있다. 정자에 앉아 눈앞에 보이는 풍경을 함께 그렸었다. 늦가을, 내 눈앞에 보이는 건 짙은 노란색의 논과 그림 그리는 두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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